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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 아르바이트하기(5)

어렸을 때에 아침 신문배달, 우유배달 등 아침운동도 하고 용돈을 버는 일거리들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인터넷의 발달로 종이신문 구독자의 감소, 대형마트에서 우유를 구입하면서 아침형 알바는 사라졌다. 대신 비대면 코로나 시대에 파 한뿌리도 배달시켜 먹는 수요의 증가와 실업률 증가, 고용불안으로 투잡을 뛰는 공급도 급증하면서 배달 전국시대가 열렸다. 전 국민이 배달을 이용해 물건을 소비하고 전 국민의 10%가 배달업에 종사한 경험이 있다는 발표가 있을 정도이다. 용돈도 벌고 운동도 하고자 배달알바를 검토한 결과 오토바이 배달은 위험하여 제외하고 내가 원하는 시간대에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쿠팡 플렉스와 배달의 민족(도보 배달)이 해볼 만하다는 결론을 냈다. 둘 다 회원가입 후 인터넷으로 안전교육을 받은 후..

카테고리 없음 2022.01.16

고전영화 다시보기(4)

직업 중 고상하지만 가장 힘들면서 선택된 사람들만 할 수 있는 것이 영화감독이다. 시나리오, 연기, 촬영, 음악 등 예술의 다양한 장르에서 종합적 완성도를 극대화시키려면 피가 마르는 고뇌의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다. 나는 세상의 모든 영화감독을 존경한다. 그래서 어떤 영화도 2시간 정도를 투자하여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감독의 말과 배우의 말은 차이가 있다.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인터뷰한 내용을 보며 새삼 느낀다. 감독이 영화를 보는 관점은 배우가 보는 관점보다 종합적이면서 세상을 보는 스펙트럼이 훨씬 넓다. 신의 영역에서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핵심적인 말로 여운이 있는 표현을 한다. 흔히 '나이를 먹으면 추억을 먹고 산다'고 한다. 고전영화는 내가 살아온 경험과 혹은 동경했던 기억들을 아름..

카테고리 없음 2022.01.15

대하소설 다시 읽기(3)

30대 직장생활 초년 시절, 홍어로 유명한 전라도 영산포에서 근무했다. 과거에는 바닷가 항구도시나 포구 사람들은 거칠고 억세기로 유명했다. 당시 몸이 불편한 동료직원이 차의 시동을 켜 둔 채 버스터미널에 신문을 사러 간 잠깐사이에 차를 도난당했다. 절도범은 명절 기간에 차를 맘껏 사용하고 한적한 도시 주택가에 버리고 갔다. 또 가로수에 오토바이를 체인으로 묶고 회식을 한 후 다음날 찾으러 갔더니 앞바퀴만 남겨놓고 몸통은 사라진 사건이 있을 정도였다. 직장생활도 순탄하지 않았다. 산재사고 발생, 노조 파업, 동료 간 폭행 등 뒷 치닦거리에 힘든 나머지 근무 5년 만에 다른 곳으로 이동하였다. 개개인으로 보면 착한 심성을 가진 사람들인데 신설사업장이고 직장생활이 처음인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체계가 잡히지 않..

카테고리 없음 2022.01.14

악기 배우기(2)

고등학교 3학년 때 야밤에 밥그릇 엎어놓고 드럼인양 치다가 부모님에게 죽게 욕 얻어먹은 적이 있다. 누구에게나 그런 추억쯤은 있을 것이다. 대학교에 들어가서는 그룹사운드에서 싱어를 잠깐 하다 말았다. 그때는 악기를 다루는 별다른 특기가 없으면 밴드짐을 나르고 소일을 하다가 싱어가 안나타나면 대타로 노래를 했다. 그 후 30년이 지나 직장에서 장기 여름휴가를 받아 무엇을 하고 보낼까 궁리를 하다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인 드럼 학원에 무작정 등록했다. 출장이 잦은 업무인지라 꾸준이 학원에 갈 형편은 안되었지만 격주에 3번씩 학원 수강을 최우선 순위를 두고 5년간 모범생이 되었다. 그러나 드럼을 가까이 두고 연습을 할 형편이 되지 않아 일취월장 실력이 늘지는 않았다. 학원 강사도 3 번 바뀌고 학원을 계속 다니..

카테고리 없음 2022.01.12

꽃 그림그리기(1)

요즘엔 꽃이름 찾기 어플이 있다지만야생화가 좋아 등산배낭에 포켓 야생화 도감 2개를 넣고 산으로 들로 쏘다녔던 적이 있었다. ,꽃 이름이 탄생한 배경 등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는 있는데 꽃 이름이 도통 외워지지 않았다. 꽃그림을 그리면 꽃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어 도움이 될 것이라 하였지만 그때는 그림 그릴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사진을 찍어 반복하여 보면서 꽃 이름을 외웠었다. 나는 그림에 소질이 있다고 착각하고 살아왔다. 여행을 하다보면 이젤을 받쳐놓고 그림그리기에 열중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움에 바라보다 이제야 그림 공부를 시작한다. 평생교육원에 등록하여 본격적인 준비하려 하였으나 코로나가 또다시 극성이어서 우선 '5분 꽃 스케치'란 책을 사서 독학을 시작했다. 밑그림이 그려져 있어 초보자도 ..

기타 2022.01.10

전라도 유배지 여행

블로그 카테고리 역사기행에 등재했던 25군데 전라도 여행지에 대한 글을 묶어 전자책으로 발간하였습니다. 전자책 전문출판사 유페이퍼에 전자책을 등록하였고 ISBN 번호를 발급받은 후(10일 정도 소요) YES24, 교보문고,알라딘 등 대형서점에 순차적으로 전자책으로 출간(7일정도 소요)되고 있습니다. 주요 독자층을 감안하여 종이책 발간도 검토했으나 사진이 많아 선명한 화질을 제공하고 책 재고부담을 피하기 위해 전자책으로 출간하였습니다. 이러한 절차가 책을 출간하는데 가장 경제적이고 실용적인 방법이고 만약 종이책을 원한다면 150만원 정도 투자하여 최소 부수로 종이책을 만들고(전자책은 자동으로 연계출판) 예약주문으로 종이책을 출간하는 법이 있다고 합니다 내용은 블로그가 더 자세하나 편집과 재배열을 통해 책의..

카테고리 없음 2021.10.07

"공주에서 노비로... 비운의 공주" 경혜공주의 길을 따라

1436년(세종18년) 경혜공주는 문종과 후궁 권씨사이에 맏딸로 태어났다. 이듬해 어머니가 세자빈으로 승격됨에 따라 그녀는 동궁인 경복궁 자선당에서 생활하게 된다. 그러나 7세 때 어머니가 남동생(후에 단종)을 낳다가 산욕으로 24세의 나이에 세상을 뜬다. 어머니를 잃고도 왕실에는 수많은 어른들이 있었고 수양대군, 안평대군, 금성대군 등 숙부들이 잘해주어 궁에서 행복한 생활을 했다. 15세에 세종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왕실에서는 혼사를 서둘렀다. 자칫 국상이 선포되면 3년동안 혼인이 금지되기 때문이었다. 그 해 한성부윤 정충경의 아들 정종(후에 영양위)과 혼사를 치뤘고, 52일 후에 세종이 승하한다. 아버지 문종이 보위에 오르자 그녀는 자동으로 공주가 된다. 문종의 딸사랑은 지극하여 대신의 반대를 무릎쓰고..

카테고리 없음 2021.08.14

"먼 바다건너 추사를 찾아온 사람들" 김정희의 길을 따라

추사는 1786년(정조10년) 충남 예산에서 병조판서 김노경과 기계유씨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가문은 대대로 왕과 혼인으로 맺어져 그가 문과에 급제하자 조정에서 축하할 정도로 권세가 있는 집안이었다. 34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암행어사, 설서(세자에게 經史와 道義를 가르치는 정7품 관직), 시강원보덕(세자를 가르치는 시강원의 주재관 종3품)을 지냈다. 45세에 부친 김노경이 윤상도옥사의 배후로 지목되어 전남 고금도로 유배되었으나 순조의 배려로 풀려나고 추사도 51세에 병조참판, 성균관대사성(성균관 총책임자 정3품)을 역임했다. 헌종이 즉위하자 순원왕후 김씨가 수렴청정하면서 10년전 윤상도 옥사를 빌미로 55세에 9년간 제주도에 유배된다. 65세엔 친구인 영의정 권돈인의 일에 연루되어 다시 함경도..

카테고리 없음 2021.08.10

"조선 제일의 천재 실학자" 다산 정약용의 길을 따라

1762년 경기도 남양주에서 아버지 정재윤과 어머니 해남 윤씨사이에서 막내로 태어났다. 어릴적 성품은 매우 차분하고 좀처럼 화를 내지 않았다고 한다. 성균관 유생시절 시를 잘지어 정조의 총애를 받았다. 28세에 식년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카톨릭교인이라 탄핵을 받고 충청남도 해미에 유배된지 10일만에 풀려난다. 31세에 거중기를 제작하고 서양식 축성법을 기초로 수원화성 축조에 기여한다. 33세에 경기도 암행어사로 나가 관찰사 서용보의 비리를 고발하여 파직시킨다. 후에 서용보는 44세의 젊은 나이에 우의정에 올라 죽을때까지 정약용을 괴롭힌다. 정조가 세상을 뜨자 34세에 신유박해에 휩쓸려 배교를 선택하고 사형에서 유배로 감형되어 강진으로 떠난다. 강진현감 이안묵은 노론벽파로 재임 3년동안 다산을 냉혹하게 대한..

카테고리 없음 2021.08.08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구한 홍의장군" 곽재우의 길을 따라

1552년 경남 의령에서 아버지 곽월과 어머니 전주 강씨 사이에서 세째아들로 태어났다. 친어머니 강씨부인은 그의 나이 세살 때 돌아가시고 계모 허씨의 보살핌으로 성장했다. 외조부 강응두는 의령의 대부호였으며 어머니 강씨부인이 외동딸이었기때문에 아버지는 장인의 재산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계모 허씨부인도 집안 대대로 부자인데다 무남독녀인지라 곽월의 재산은 크게 불어났다. 곽재우는 10대 중반에 인근 산음에 정착한 남명 조식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16세에 창원의 부호 상주 김씨 집안의 여식(남명의 외손녀)을 아내로 맞이한다. 19세때부터 무술연마에 관심을 기울인다. 장인이 무관출신이기도 하고 지방출신이라 비교적 경쟁률이 낮은 무과를 준비한 듯하다, 야사에 의하면 33세에 대과에 2등으로 급제하였으나 답안이 ..

카테고리 없음 2021.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