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백낙신
1814년 수군첨절제사를 지낸 아버지 백형수와 어머니 전주 이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44세에 전라좌수사에 임명되어 백성을 착취하다 조정에 보고되어 처벌받지만 47세 때 다시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로 임명되어 진주목사 홍병원과 결탁한다. 이들은 착취방법을 한단계 업그레이드한다. 장부를 조작하여 막대한 환곡을 거둬들일 뿐만 아니라 개간지에도 과세를 하여 세곡을 빼돌렸는데 1년이 채 안돼 모여진 재물이 미곡 15,000석에 달했다.
민심이 폭발한 계기는 역대 진주목사들이 빼돌린 28,000석과 우병영에 밀린 환곡과군포 4,000석을 일시에 부과하기로 한 것이었다. 이에 몰락한 양반 유계춘 등이 진주 백성 8만명을 모아 농민군을 조직한 후 일제히 봉기하였다. 여기엔 아전을 제외한 포졸들까지 봉기에 가담하였으니 민심이 등을 돌렸으며 민란이 10일이상 지속되었다.
백낙신은 이를 수습하려다 오히려 포위되어 하루동안 감금되었다 풀려나고 아전 두사람이 곤장에 맞아 죽었다. 조정에서는 안핵사를 파견하여 백낙신의 재산을 몰수하고 전라도 고금도로 귀양을 보냈다. 이 진주봉기를 시작으로 전국 71곳에서 임술농민봉기가 일어났다.
이후 백낙신은 귀양 1년만에 고향인 양주로 이배되었다가 51세에 영종진첨절제사로 복직하였고 병인양요때는 영종도와 행주를 방어했다. 63세때는 평안도 병마절도사를 지냈고 1887년 73세로 세상을 떠났다.
o 조병갑
1844년 호조참판 조규순과 어머니 김해김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19세에 규장각 검서관으로 관직을 시작하여 예산, 함양, 천안 부사를 역임하였다. 32세 때 천안부사 시절 유배지로 이송 중이던 죄수가 탈출하여 강력한 탄핵을 받고 구금당하여 1계급 강등이라는 중징계를 받는다. 그러나 직속상관인 충청도관찰사 남일우가 고종을 면담하는 자리에서 우수 수령으로 칭찬하여 1년도 되지않아 다시 지방관으로 발령받는다.
49세에 경상도 김해부사를 거쳐 전라도 고부군수로 부임하여 늘 하던 탐관오리 짓을 일삼았다. 대표적인 일이 고부 에 저수지가 있었음에도 그 위에 더 큰 보를 만든답시고 백성을 동원하고 만석보가 완성된 후에는 물세를 받았다. 또한 인근 태인군수를 지낸 부친의 공적비를 세우기 위해 세금을 걷고, 만석보를 부실공사해 장마철마다 침수피해가 발생하여 원성이 자자했다.
또 모친상을 당하자 부조금 2천냥을 걷어오라는 지시에 항의하는 주민 대표 전봉준의 부친 전창혁을 곤장으로 때려 죽이는 사고가 발생하여 고부민란이 일어났다. 조병갑은 미리 도망쳐 목숨은 부지했지만 이 책임을 물어 전라도 고금도로 유배를 당한다. 유배 후 1년만에 사면을 받고 54세에 대하닌국 고등재판소 판사를 맡아 동학 2대교주 최시형에게 사형 판결을 내린다.
이후 법무민사국장, 경상남도 관찰부주사를 거쳐 60세에 정3품 비서원승에 제수되지만 고사후 관직에서 물러아 67세에 세상을 뜬다. <나무위키 백과에서 정리>
두 탐관오리의 삶의 궤적에서 나라가 망하려고 하면 보이는 징조들이 있다.
첫째, 가장 밑마닥에서 저항하는 대규모 민란이 일어난다. 민심이 등을 돌렸다는 조짐이다.
둘째, 기존에는 아전들 즉 하급층만 횡령을 일삼았는데 중간층인 지방관리들까지 조직적으로 부정에 참여한다. 그리고 상납을 통해 뒤를 봐주는 고급관리들이 있어 사고를 쳐도 1년내에 회생한다. 상납의 시스템이 완비되었다.
셋째, 민란이 일어나면 원인 제공한 벼슬아치는 사약을 받아야 함에도 유배에 그치고 민란을 주도한 지도자만 수괴로 처형을 당한다. 언로가 막혀 정확한 사건의 진실이 전달되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의사결정권자는 사태의 심각성을 알지 못할 정도로 무능하고 주위에 있는 참모진들이 사건의 본질을 왜곡시킨다.
넷째, 탐관오리들은 이후에도 조직에서 승승장구하다 평균수명보다 훨씬 오래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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