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암 유희춘은 중종 8년 아버지 유계린과 어머니 최씨사이에 출생하였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벼슬을 하지 않았지만 지역에서는 나름 학자집안으로 덕망이 높았다. 26세 때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선조를 가르쳤다. 선조는 항상 "내가 공부하게 된 것은 희춘에게 힘 입은 바 크다"고 했다.
35세 때 양재역 벽서사건에 연루되어 제주도로 유배되었다가 고향인 해남과 가깝다하여 함경도 종성으로 이배된다. 그 곳에서 19년간 독서와 저술에 몰두한다. 53세 때 충청도 은진으로 이배되었다. 2년 후 선조가 즉위하자 복직되어 대사성, 부제학을 거친 후 이조참판을 지내다가 63세에 처가집이 있는 담양으로 낙향한다. 부제학시절 유희춘은 경연에서 특출한 실력을 보여 "경전은 모르는 것이 없고 걸어다니는 백과사전"이라고 선조는 유희춘의 총명함과 암기력을 칭찬하였다.
미암은 19년간의 귀양살이 후 복직부터 죽을 때까지 11년간 일어난 일들을 일기에 적어내려 갔다. 유배생활 중 체득한 역사적 소명의식으로 궁중에서 일어난 일과 주변 일상생활에 대한 내용을 매일 꼼꼼히 기록했다. 이 미암일기는 선조 초기의 정치, 사회, 경제, 풍속 등 방대한 내용을 담아 율곡 이이의 경연일기와 함께 임란 때 없어진 선조실록을 다시 편찬하는데 기초자료가 되었다. 나중에 보물 제260호로 지정되었다.
유희춘을 이야기할때 주목해야 할 사람이 그의 부인 송덕봉이다. 담양 대덕에서 태어났으며 시와 경서를 섭렵하여 일찍이 문학적 재능을 드러냈다. 조선 4대 여류문인으로 거론된다. 미암의 오랜 귀양살이 때문에 덕봉은 홀로 시부모공양과 식솔을 관리하며 손수 설계하여 안채, 행랑채, 사랑채를 지었는데 남편 미암이 와서보고 지은 시이다.
누가 이리 기이한 규모를 계획했는가 / 부인의 마음이 반수와 같은 장인일세 / 남쪽으로 열어제친 서실은 환하고 /
북쪽으로 접한 다락에는 옛 것을 담을 수 있네 /
이들 부부는 떨어져 지낸 20년동안 시, 편지, 글로 소통하며 한평생을 동반자, 문학적 동료로 살았다. 전라감사를 지낸 미암은 사헌부대사관으로 승진되어 이 사실을 자랑삼아 덕봉에게 편지로 알렸는데 뜻밖의 답장이 온다.
황금띠를 둘렀으니 선비로서는 극진한 영화 / 돌아와 초당에 누워 건강을 돌봄이 어떠하오 /
벼슬은 사양할 수 있다고 일찍이 약속했으니 / 뜨락에서 돌아오길 기다리오 /
미암은 덕봉의 시를 미암일기의 뒷편에 별책으로 수록했다. 미암이 죽고난 후 1년만에 덕봉은 그의 뒤를 따랐다. 그의 후손들은 미암을 추모하기 위해 미암사당과 모현관(미암일지 보관)을 건립했다.
요즘에는 카톡, 화상전화, 문자등이 발달하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남녀간 소통의 도구는 차고 넘치나 서로의 마음을 전하지 않아 헤어지고 이혼하는 부부(커플)가 부지기수다. 그러나 미암 부부는 가부장사회인 조선시대에 20년간 멀리 떨어져 있었어도 서신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소통한 가장 이상적인 부부의 모범사례이다. 남편 유희춘은 자상하여 사소한 것까지 부인에게 표현하고 부인이 반대의견을 내면 여자의 말이라 무시하지 않고 즉시 "이길이 아닌가베"하고 반성하고 발길을 돌린다. 부인 송덕봉은 남편이 부재시 가정 경제를 책임지고 살림을 늘려가고 자신의 생각을 떳떳하게 남편에게 전하고 고마움을 표시한다. 미암은 부인의 재능이 아까워 한시를 모아 문집으로 만들 것을 조카에게 부탁한다. 내조, 외조의 달인들이다. 지금 들어도 낯 간지럽지만 체면과 점잔을 조금 가미한 부부의 러브송 한편을 발췌한다. 한양과 담양에 부부가 떨어져 살았을 당시 남편의 이벤트(술)와 아내의 답가이다.
눈 내리고 바람 더욱 차가우니 / 찬 방에 앉아있을 당신이 생각나오 /
이 술이 비록 下品이지만 / 차가운 속을 데워주기엔 족할 것이오 / - 류희춘
국화 꽃잎에 비록 눈발 날리지만 / 은대엔 따뜻한 방이 있겠지요? /
찬 방에서 따뜻한 술을 받으니 / 속을 채울 수 있어 정말 고맙군요 / - 송덕봉
담양여행)
모현관, 미암사당 -> 삼지내 슬로시티 -> 금성산성 ->추월산 또는 담양호 용마루길(4km, 2시간) -> 가마골계곡 트레킹(2.5km, 2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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