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과 시중은행이 지급준비율 인하를 놓고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한은 고위 관계자는 16일 “은행들이 정부와 당을 상대로 지준율 인하를 위해 전방위 로비를 벌이고 있다”며 “이미 지급준비예금에 대해 5000억원 규모의 이자를 지급한 상태에서 지준율 인하는 검토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은의 또 다른 고위 관계자는 “지준예금 이자는 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 비율을 높여주기 위한 특혜였다”며 “그런데도 은행들이 다시 지준율 인하를 집요하게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행태”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은이 은행에 자금을 공급하지만 은행들은 이를 자기 ‘곳간’에 채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은행들은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지준율을 인하해달라고 요구한다. 이들은 지준율이 낮아지면 그 비율만큼 지준예금을 돌려받게 돼 대출 여력이 높아진다는 논리를 편다. 이에 대해 한은은 지준율을 낮추더라도 은행들이 기업 및 가계대출 확대보다 통안채, 환매조건부채권(RP) 방식 매매 등 안전자산 위주로 ‘재활용’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한은 관계자는 “은행들로서는 금리가 낮더라도 지준예금 일부를 돌려받게 되면 무수익자산을 수익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이것이 시중 유동성 확대로 이어진다고 볼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머니투데이, 2008.12.16.(이승제 기자)>에서 발췌
지급준비제도란 예금자 보호를 위해 금융기관이 고객의 지급 요구에 대비하여 예금의 일정 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급준비금(reserve)으로 보유하도록 하는 제도를 말하며, 이때 적용되는 비율을 지급준비율이라 한다.
지급준비제도는 당초 은행이 발행하는 은행권(bank note)의 원활한 유통과 예금자 보호를 위해 미국에서 시작되어 1863년 제도화되었으며, 1930년대 이후 중앙은행의 통화량 조절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금융자유화로 시장 기능에 바탕을 둔 통화 정책의 필요성이 부각되면서 공개시장 조작이 주요 통화 정책 수단으로 사용됨에 따라 지급준비 정책의 역할이 축소되었다.
지급준비제도는 금융기관의 신용창조 기능을 통해 통화 공급량에 영향을 주게 된다. 중앙은행이 지급준비율을 인하하면 금융기관이 보유해야 하는 지급준비금이 줄어 대출 증대를 통해 유동성이 창출(통화승수 증가)되고 시중금리가 하락하며, 반대로 지급준비율을 인상하면 대출 감소와 통화량 축소, 금리 상승을 유발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2005년 10월 이후 다섯 차례의 콜금리 목표 인상에도 불구하고 주택가격 상승에 따른 대출수요 증가와 해외자금 유입 등으로 통화증가율이 급등하자, 2006년 11월 23일 과잉 유동성 흡수를 위해 지급준비율을 인상했다. 이에 따라 12월 29일 CD 금리가 0.25%포인트 상승한 바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지급준비율은 장기저축성예금 0%, 정기예금·CD 등 2.0%, 요구불예금 등 기타 예금 7.0%로 단기예금의 지급준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