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헌은 구한말(1851년) 전라북도 옥구군에서 임용래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집안 대대로 향리출신으로 17세에 옥구호방, 22세에 호장이 되었다. 그는 수완이 좋아 향리시절 재산을 많이 모았다. 38세에 전라도에 큰 기근이 일어나 돈 4천냥(현 4억정도)과 쌀 70석을 기부하여 백성의 가난을 구제하였다. 이러한 공으로 낙안군수에 제수된다. 군수시절 탐관오리의 가렴주구를 막고 민생안전을 도모하였으나 조정에서 수수방관하자 재임 2년후 사임하고 43세에 정읍으로 이주하여 학문에 정진한다.
44세에 동학혁명이 일어나 마을사람들이 동요하자 동학에 가담하지 말고 임금에 충성하라고 당부한다. 45세에 동학 접주 김개남이 태인으로 피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관아에 고발하여 체포케 한다. 그 공으로 임실군수직과 쌀 20석을 하사받았으나 거절한다.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가산을 정리하고 집안 노비를 석방했으며 동민에게 국가의 치욕을 설명하고 보국을 말하다가 일본 경찰에게 잡혀 옥고를 치룬다.
55세에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의병을 일으킬 기회를 엿보던 중 56세에 면암 최익현이 찾아와 사제의 의를 맺고 무성서원에서 의병 봉기를 한다. 당시 최익현의 나이가 많아 모든일을 돈헌에게 위임한다. 800여명의 의병을 모집하여 순창객사에서 관군과 대치 중 의병을 자진해산하고 체포되어 대마도로 유배를 간다. 대마도에서 면암의 최후를 지켜고 57세에 유배 2년형을 마치고 조선으로 귀국하여 국채보상운동 등 비폭력 항일운동에 적극 참여한다. 최익현의 유서를 고종에게 전달하였는데 이 일로 체포되어 구금되었고 조선총독부로부터 영광군수직 제안을 거부하는 등 몇차례 구금을 반복한다.
60세에 한일합방이 일어나자 62세에 고종이 독립의군부 전라남북도 순무대장에 임명된다. 일제에 항쟁방법을 제시한 '관견'을 고종에게 바치고 독립의군부 사령총장에 임명된다. 독립의군부는 편지, 전화 등을 통해 각국의 외교관, 일본정부에 국정반환요구서를 전달하는 비폭력 항일운동을 목적으로 했다. 이는 나중 3.1운동의 모태가 된다. 64세에 동지 김창숙이 일경에게 발각된어 거사의 실패를 예견하고 임병찬은 총독에게 면담요청을 하고 국권요구반환서를 보낸다. 그는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된 후 세차례의 자살기도가 실패로 돌아가고 거문도 유배형에 처해진다. 거문도에서 단식투쟁을 하다 66세에 사망한다.
이렇듯 일생을 일제에 항거, 투옥을 되풀이하는 고단한 의병장의 삶을 살았지만 친구인 동학접주 김개남을 관아에 밀고한 사건으로 평가절하받는다. 최근 SBS에서 방영된 '녹두꽃'의 김개남 체포장면에서 드라마의 재미를 위해 '군수자리를 얻기 위해 비열한 방법으로 김개남을 유인하여 체포'하는 내용이 나온다. 밀고자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전후사정이 임병찬으로 오해하기 충분하다. 역사드라마는 재미로 시청자들을 끌어모아 역사를 널리 알리는 순기능이 있지만 그 재미를 위해 창작한 허구가 역사적 사실로 오인되어 진실을 가리는 역기능이 있다.
돈헌 후손들의 주장이다 ' 당시는 나라에 대한 충성이 효심보다 중시되는 시대였다. 돈헌은 고종을 지켜야 한다는 북벽파이었기 때문에 임금에게 반기를 든 동학을 적대시 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전봉준은 관군과 협상하려는 반면 김개남은 강경파로 위험인물이라 생각하여 관에 고발하였다' 관에 고발한 것은 Fact이다. 그러나 전후관계를 따져보면 나라를 지킨다는 신념에 의해서 소신에 따라 한 행동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난 후손의 입장에 한표이다.
1) 돈헌 임병찬의 유적지
가. 임병찬창의유적지 : 돈헌이 의병을 모아 훈련한 장소로 정읍시 산내면 종성리 산중에 있다
나. 병오창의기적비 : 면암과 함께 의병봉기 한 장소로 정읍시 칠보면 무성서원내에 있다
다. 순창객사 항일의적비 : 의병이 관군과 대치하던 항일의병본부로 순창초등학교내에 있다
라. 동헌 임병찬 순국비 : 거문도에 있다
마. 임병찬의병장의 묘 : 순창 회문산 정상아래에 있다
2) 산행을 겸한 순창 라이딩(트레킹), 코스 : 개인적으로 섬진강 자전거길 중 경치가 가장 아름다운 코스이다
김용택시인 생가 -> 장군목유원지 (6.4Km)-> 용궐산 하늘길(1시간 등산) -> 체계산 출렁다리(11.9Km) ->체계산
'역사기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네스북에 오를.. 조선 최초" 교산 허균의 길을 따라 (0) | 2021.07.31 |
---|---|
"마마(천연두)로부터 아이들을 구한 醫人" 송촌 지석영의 길을 따라 (0) | 2021.07.30 |
"조선 건국의 일등공신, 개혁가" 삼봉 정도전의 길을 따라 (0) | 2021.07.28 |
"매화에 미친 묵장의 영수" 우봉 조희룡의 길을 따라 (0) | 2021.07.28 |
"유배지에서 피어난 애절한 사랑" 정헌 조정철의 길을 따라 (0) | 2021.07.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