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기행

"유배지에서 피어난 애절한 사랑" 정헌 조정철의 길을 따라

김성완의 블로그 2021. 7. 27. 16:14

  정헌 조정철은 영조27년 호조참판 조영순과 안동김씨 사이에서 태어난다. 24세 때 별시문과 병과에 급제하여 중추부지사를 지냈다. 그의 나이 27세 때 정조시해 미수사건에 장인이 연루되어 제주도로 유배를 떠난다. 조정철은 원래 참형에 해당되었으나 충신이었던 증조부 조태재 덕분에 목숨만은 부지하였다. 유배지에 도착하자 당시 제주판관은 개인적인 원한으로 조정철이 책을 읽는 것조차 금지하며 괴롭히기 시작했다. 부친의 3년상도 끝나지 않았고 부인의 자결소식에 참담한 심정으로 일체 바깥출입을 삼가고 궁핍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유배 3년째 되던해 그를 사모하던 마을 향리의 딸 홍윤애가 헌신적인 사랑으로 보살펴 평정을 찾던 중 할아버지 때 부터 집안 원수지간이던 정적 이시구가 제주목사로 부임한다. 조정철을 죽일 죄목을 찾던 중 홍윤애가 조정철의 집에 드나드는 것을 알고 딸을 낳은지 30일된 홍윤애를 잡아가두고 문초를 한다. 정헌의 행동과 임금과 조정을 비방했는지 여부를 문초하였으나 홍윤애는 청소나 하고 잔일만 거들었을 뿐이다고 부인하자 거꾸러 매달고 곤장 70대를 쳐 죽게 만든다. 그녀의 나이 고작 20세였다. 김시구는 조정철이 유배지에서 역모를 꾸민다고 허위보고를 올렸으나 조정철은 혹독한 심문을 받고 무혐의로 풀려나고 김시구는 무고한 양민을 죽인 죄로 귀양을 간다.

 

  홍윤애가 옥에 감금되어 심문을 받던 8월에는 폭풍우가 몹씨 일었다.

하늘로 감아올리는 원인모를 재앙 / 죽음은 실로 나 때문이지 어찌 그대의 원혼일까? /

가뭄에 열흘 거듭된 세찬 비바람 / 섬사람들, 오히려 여랑의 원한이라 말들하네 /

 

  어느덧 세월이 흘러 27년을 제주도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육지로 이배되어 전남 광양에서 유배생활을 2년 더 한 뒤 그의 나이 56세가 되어 기나긴 유배생활을 마친다. 관직에 복귀한 후 60세 때 제주목사를 자청한다. 화북포에 입도히던 날, 마중나온 관리를 뿌리치고 홍윤애의 무덤을 찾아간다. 그리고 자신의 딸을 만나 호적에 올리고 홍윤애의 묘를 단장하고 洪義女支墓라 새긴 비석을 세우고 그녀와 인연, 죽게된 사연을 비문에 새긴다.

 

옥 같던 그대 얼굴 묻힌 지 몇 해던가 / 누가 그대의 원한을 하늘에 호소할 수 있으리 /

황천길은 먼데 누굴 의지해 돌아갔는가 / 진한 피 깊이 간진하고 죽고 나도 인연은 이어졌네 /

천고에 높은 이름 열문에 빛나리니 / 일문에 높은 절개 모두 어진 형제였네 /

아름다운 두 떨기 꽃 글로 짓기 어려운데 / 푸른 풀만 무덤에 우거져 있구나 /

 

  정헌은 제주목사 재임시절 제주성을 보수증축하고 감귤과원을 설치, 백성에게 귤재배를 장려하였다. 유배생활 중에 백성의 고충을 알았기에 부당한 세금과 과중한 부역을 부과하지 않도록 힘썼다.

 

 광양 애국지사를 찾아서)

1) 망덕포구 정병욱 가옥 : 섬진강은 진안군 데미샘에서 발원하여 3개도 550리를 굽이 돌아 망덕포구에서 광양만과 남해로 흘러간다. 망덕포구는 민물과 바닷물이 섞여있어 장어, 전어, 벚굴, 재첩이 유명하다. 또한 윤동주시인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원고를 일제의 눈을 피해 보관하고 있다가 발간한 정병욱 가옥이 있는 곳이다. 정병욱은 윤동주의 연희전문학교 후배로 윤동주시인은 일본에 끌려가기 전 원고3부를 필사하여 1부는 스승에게, 1부는 본인이, 나머지 1부를 정병욱에게 맡긴다. 졸업을 앞두고 정병욱도 일제에 강제징병되자 원고를 광양의 어머니께 맡기면서 내가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조국이 독립이 되거든 이 원고를 연희전문학교로 보내 세상에 알려달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떠난다. 어머니는 주조장 마루바닥을 뜯고 원고를 명주보자기에 겹겹이 싸서 항아리에 넣어 소중히 보관하였다고 한다.  결국 윤동주는 옥사하고 정병욱은 무사히 귀국하여 윤동주의 시집이 우여곡절 끝에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2) 매천황현 생가 : 매천 황현은 1864년 광양시 봉강면 석사마을에서 태어났다. 34세에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당시 정권의 부패와 부정이 극심해지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다. 그는 16년의 은둔생활을 하면서 역사서 '매천야록' 등을 썼으며 1910년 망국의 비보를 듣자 "나라가 선비 기르기 500년인데 나라가 망해도 누구 하나 죽는 자가 없구나. 어찌 통탄하지 않으랴" 하시고 구례의 오두막에서 자결을 했다. 후세 사람은 그 곳에 사당을 지어(매천사) 매천의 정신을 기리고 있으며 지리산 천은사 가는길에 있다.

<절명시> 새와 짐승 슬피 울고 산하도 찡그리니.... / 무궁화 세계가 이미 망했구나 / 가을 등불아래 책 덮고 천고의 역사를 회고하니 / 글을 아는 인간의 구실이 참으로 어렵구나 /

 

  광양 야경, 일몰여행)

1) 광양 구봉산(473m)은 넓은 아스팔트 포장도로로 산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다. 정상 전망대에 서면 광양산단, 하동, 남해까지 바라볼수 있다. 일출, 일몰, 야경명소이다.

 

2) 묘도 봉화산, 이순신대교

묘도 봉화산은 여수산단의 야경을 여수 반대쪽에서 볼 수 있다. 이순신대교휴게소 뒤에 산 중턱 주차장에 주차하고 20분정도 시멘트길을 걸어 오르면 여수산단을 한 눈에 조망하는 전망대에 도착한다. 밤에도 가로등이 켜져있어 위험하지 않다. 이순신대교 휴게소는 이순신대교 야경을 찍는 포인트다. 이순신대교는 주탑 사이의 거리가 1,545m(충무공 출생연도)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고 주탑의 높이도 270m로 인천대교(239m) 보다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