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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의 CEO, 세종(독서클럽발표자료)

김성완의 블로그 2010. 7. 29. 17:08

1. 결단의 중심에 서라 - 자기중심을 잡아라
확고한 신념과 올바른 자세, 그리고 포용력을 가진 리더였다. 그 대표적인 예를 훈민정음 개발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당시 문자는 권력과 힘, 지식과 특권의 상징이었기에 당시지식인층의 강한 반발을 불러왔다. 게다가 자칫 중국의 간섭까지도 받을 수도 있었던 상황을 자기중심을 잡고 슬기롭게 극복했던 것이다.

2. 마음을 경영하라 - 조직의 청진기가 되라
세종은 말단 시하들에게까지 예를 갖추어 대했다. 특히 인재의 요람이라 할 수 있는 집현전 소속 학자들에게는 더욱 극진하였는데, '내관으로 하여금 손님을 대하듯 하게 하였다'라는 말이 전해질 정도로 자신의 조직원들을 우대하는 뜻을 전달하였다. 또한 때때로 자신의 정서를 자제하여 말하는 이로 하여금 자신이 얼마나 존중받고 있는지 충분히 알게 했다고 한다.

3. 정감으로 압도하라 - 스킨십 경영을 하라
세종은 상대를 정감으로 압도하였다. 집현전에서 숙직을 하던 신숙주가 밤새 글 읽기를 하다가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잠자리에 든 사실을 본 세종은 자신의 돈피 갖옷을 벗어 그 위에 덮어 주게 하였다는 일화가 그것을 잘 나타낸다.

4. 지혜로 경영하라
세종은 지식으로 충만한 CEO였지만 그것만이 아니었다. 세종은 적절히 약함을 취하는 지혜를 발현하기도 했다. 슬기롭게 쇼맨십도 부릴 줄 하는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이 책에서 다음과 같은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임금이 말년에 내불당을 지었는데. 대신들이 궁궐 안에 불당을 짓는 것은 일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만류하였으나 이를 듣지 않으므로, 학사들이 물러 나와 다들 집으로 돌아가니 집현전이 한때 텅 비었다. 임금이 눈물을 지으며 황희를 불러 이르기를, '집현전 여러 선비들이 나를 버리고 가버렸으니, 장차 이를 어찌하면 좋겠는가'하였다. 이에 황희가 곧 두루 모든 학사의 집을 찾아 돌아오기를 간청하였다."

 불교를 억제하고 유교를 치국의 이념으로 삼았던 세종대왕이 궁궐 안에 불당을 지은 것에 반발한 국가 주요 정책을 담당하는 싱크탱크 요원들이 파업을 한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해 세종은 CEO로서도 결코 약한 인물이 아니었음에도 그는 짐짓 자신의 약함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신하들의 마음을 녹여 버리고자 했던 것이다. 작은 자신의 수고로 큰 저항마저 봄눈 녹여내듯 했다는 것이다.

5. 인재경영을 하라
세종시대 과학과 IT기술은 그의 능력주의에 근거한 열린 이사 정책과 개방정책에 힘입어 조선 500년 역사상 유례없는 발전을 이룩했다.

6. 위임할 줄 알라
세종은 스스로 많이 안다고 해서 혼자 모든 것을 하지는 않았다. 그는 위임할 줄 아는 CEO였다. 세종은 집현전을 비롯한 실무진에 권한의 대부분을 위임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알고 솔직해 지는 것으로 자신감을 표출했다.

7. CEO는 걸림돌을 제거해 주는 사람
세종은 팀원들이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모든 장애를 제거하는 데 앞장섰다. 어떠한 사안이 CEO에게까지 올라왔다면, 이것은 이미 수많은 불만과 좌절을 겪은 다음이다. 세종은 이를 알고 현장 속에서 그 자신이 교정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찾아내 이를 개선하고자 했다.

8. CEO는 균형이 있어야 한다
세종은 어느 세력에도 치우치지 않았다. 세종은 새로운 인재들을 뽑아서 쓰라는 권고를 들었지만, 오히려 태종 시대의 구신들을 고위지게에 배치하고, 자기가 뽑은 신하들은 하위직에 포진시켜, 신·구세대간에 자연스러운 권력 이동과 균형을 꾀한다. 결과적으로 권력 밖으로 밀려나는 '소외'나, 그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나는 '일탈 행위'는 발생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