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기행

"성리학의 참 뜻을 실천한 선비" 한훤당 김굉필의 길을따라

김성완의 블로그 2021. 7. 25. 15:41

  "옛날에 배우는 자들은 자신을 위한 학문을 하였는데 지금 배우는 자들은 남을 위한 학문을 한다. 자신을 위한 학문을 하면 성현에 이를수 있고 남을 위한 학문을 하면 겨우 과거에 급제하여 명예와 녹을 얻는 것을 꾀할 뿐이니 어찌 잘못이 아니겠는가? 이제 사문이 불행하여 哲人이 서거하였다. 한원당 김굉필을 모신 옥천서원기에서 고봉 기대승이 추모한 글이다.

  김굉필은 단종2년 아버지 김뉴와 어머니 청주 한씨사이에서 출생했다. 어려서 호방하고 거리낌이 없어 저자거리에서 사람들을 매로 치는 일이 많아 모두 피했다고 한다. 성장하면서 분발하여 학문에 힘쓰게 되었다. 정여창과 함께 김종직의 제자가 되어 30세가 될 때까지 스스로를 소학동자라 칭하며 소학만을 공부하며 修己하였는데 김종직은 "성인이 될 바탕이 있다"고 김굉필을 극찬하였다.

 

  26세 때 생원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입학하였다. 40세의 늦은 나이에 벼슬을 시작하여 사헌부 감찰, 형조좌랑을 지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대쪽같이 곧고 강직한 성격은 스승 김종직과의 불화에도 잘 나타난다. 김종직이 이조참판에 올랐을 때 그의 문하생들은 김종직이 훈구파에 맞서 조정을 바로잡을 것을 기대했으나 김종직은 도무지 움직이지 않았다. 김굉필은 한편의 시를 지어 완곡히 그의 처세를 비판했다.

 

  도라는 것은 겨울에 갖옷을 입고 여름엔 얼음 마시는 것인데 / 날 개면 가고 비 오면 그치는 것을 어찌 全能이라 하겠는가 / 난초도 속된 것을 좆아 결국 변한다면 어느 누가 소는 밭을 갈고 말은 사람이 타는 것이라고 믿을 수 있겠는가 /

이후 변하지 않은 김종직에 실망하여 다시는 스승을 보지 않았다.

 

  44세 때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김종직의 문하로 붕당을 도모했다는 죄목으로 장80대에 평안도로 유배되었다. 이곳에서 지방관으로 부임한 조원강의 아들 조광조를 제자로 맞이한다, 46세 때 순천으로 이배되어 최산두, 김인후와 교우하면서 호남사림 형성의 초석이 된다. 51세 때 연산군 어머니 폐위사건에 대한 보복으로 일어난 갑자사화로 처형된다.

 

  김굉필은 죽음 앞에서도 얼굴 빛 하나 변하지 않았다. 자신의 긴 수염을 입에 물고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 하였거늘 어찌 이것까지 상하게 할 수 있겠는가"하고 조용히 목을 늘여뜨렸다.

 

  그는 조용한 성품에 세상과 교류도 많지 않았으며 오로지 자신의 수양과 학문 정진에만 힘썼다. 비록 높은 벼슬을 하지 않았지만 인재를 양성하고 오직 성리학의 참 뚯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 후학의 모범이 되었기에 조선시대 동방오현의 으뜸으로 문묘에 배향되었다. 그는 경헌록 등 3개의 저서외 글이나 시를 많이 남기지 않았다.  그가 저잣거리에서 처형을 당한 후 부인 순천박씨가 책때문에 이 모든 화를 당했다며 소장하던 서적을 모두 불태운 것도 원인 중의 하나라고 한다. 그가 남긴 세상과의 인연을 접고 살겠다는 내용의 '회한'이라는 시다.

홀로 한가롭게 사니 오고가는 이도 끊기고 / 다만 외롭게 차게 비추는 밝은 달을 불러보네 /

그대는 번거롭게 나의 살림살이 묻지말게 / 두어 이랑 뜰을 메운 자욱한 물안개와 겹겹의 산 뿐 /

 

주) 동방오현은 문묘에 배향된 조선의 대표적인 성리학자 다섯분을 말하는 데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을 말한다, 율곡 이이도 들어가지 못할 만큼 가장 영예로운 자리이다.

도동서원의 중정당 :  전국의 제자들이 스승을 추모하기 위해 네모반듯한 돌을 가져와 기단을 쌓음. 기단에 있는 용네마리는 과거급제를 기원함. 도동서원이라는 현판은 퇴계 이황이 쓴 글씨이며 이황이 '공자의 도가 동쪽에서 왔다'고 칭송하여 유래가 됨. `1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승주 순천 여행)

1) 매화꽃 여행 : 매화꽃 피는 시기가 각기 다르므로 날짜 선택을 잘 해야 함

금둔사 납월매 - 납월은 음력 섣달을 말하는 것으로 남도에서 가장 빨리 매화 꽃이 핀다.

선암사 선암매 - 600년전 천불전 앞 와송과 함께 식재, 천연기념물로 지정

순천향매실마을 - 마을단위로는 가장 대단위 면적임

2) 일몰여행 :

순천만습지 용산전망대 - 용산전망대는 입구에서 도보로 1시간정도 소요되고 하산을 대비하여 후레쉬 등 준비가 필요. 상사호 일몰 드라이브 - 승주읍 신성리 사거리 -> 상사호 휴게소(일몰포인트)

와온해변 - 아득히 보이는 갯벌너머로 넘어가는 낙조가 특징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