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
[김정선의 비굴클럽]조직 속에서 개인의 목표를 달성해야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회사에 다니는 사람치고 이 흔한 '절타령'(?) 한 번 안 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알고 있다.
지금의 절을 떠나 다른 절에 둥지를 틀 더라도 상황은 별반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이 세상의 모든 절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크게 다르지 않으며 또 그러한 이유로 쉽게 절을 떠나지 못한다는 사실도 함께.
그렇다면 이번 기회에 아예 절을 떠난다는 공허한 염불만 외치지 말고 절에 맞게 자신을 리모델링하겠다는 계획을 세워 보자. 쉽게 바꾸기 힘든 절이라면 스스로라도 리모델링해 내 몸과 마음이 편하게 숨 쉴 수 있는 아지트로 만드는 것이다.
절, 즉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혹은 팀이나 부서 등의 작은 단위의 조직이라고 해도 좋겠다)을 리모델링 하기 위해서는 조직의 정체를 바로 알아야 한다. 혹시 당신은 때때로 조직을 혹은 회사를 '정의사회구현단체' 나 '바른생활운동본부' 쯤으로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존경하는 한 선배가 있다. 강직한 성품의 이 선배는 후배들에게 롤모델(role model)이 되기에 충분한 사람이었다. 후배들에게는 엄격했고 공과 사를 명확히 구분했으며 특히 불의를 보면 절대 참지 않았다.
상대가 상사나 설령 경영진이라 해도 상식과 절차에 어긋난 부분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앞장서서 입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도 늘 그 선배였다. 덕분에 조직의 나쁜 관행이나 조직의 질서도 얼마간 바로 잡히는 듯 했고 무엇보다 후배들은 그 우산 밑에서 험한 꼴 안 당하고 일하는 사치를 누릴 수 있었다.
품성이나 능력면에서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만큼 완벽한 사람이었지만 조직생활에서는 비운의 인물이었다. 무엇보다 그 선배 본인에게는 하루하루가 투쟁의 연속이었으며 결국 회사를 떠나는 것으로 우리와 이별해야만 했다.
회사는 개개인의 올곧은 성품 따위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곳임을 미리 깨달았더라면 아마 나라도 나서서 선배를 말렸을지 모르겠다. 강직하거나 정의롭지는 않아도 괜찮다. 조직의 이해관계에 맞춰서 자기 모드를 바꿀 줄 아는 사람들이 더 필요한 존재라고 믿는 곳이 조직이다.
나 역시 세상물정 몰랐던 옛날은 물론 지금도 능력있고 사심없이 일하는 사람들을 키워주지 않는 조직은 한참 잘못된 조직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허나 예전과 달라진 점이라면 조직의 비정한 생리를 알아버린 이상, 개인의 역할이나 자세도 그에 맞춰 조정하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이다.
얼마 전 프리랜서로 나선 지인은 "정말 '일'만 열심히 하고 싶다면 회사를 떠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은 전공필수 과목이며 상사, 동료, 선후배들의 비위를 맞추고 조직 내 미묘한 이해관계의 소용돌이(혹자는 이를 '사내정치'라고 한다)에서 밀려나지 않고 버텨내는 것 모두가 직장인의 의무라는 얘기다. 따라서 우리의 월급에는 노동력에 대한 댓가 이외에 '비위 맞추기' 수당, '욕 먹기' 수당, '열 받음' 수당이 등이 포함되어 있음도 알아야 한다.
회사라는 조직은 구성원 개개인이 중요시 하는 원리원칙이나 정의 등의 덕목에 연연하지 않는다. 각 조직이 처한 상황에 맞춰 절대선을 규정하며 그에 따라 구성원에게 요구하는 역할도 달라진다. 여기에 맞게 행동하면 능력있고 정의롭고 조직이 원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미안하지만 회사의 정의에 반하는 사람이 되고 만다.
따라서 설령 개인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의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기준과 원칙이 지금 현재 조직의 방향과 맞지 않는다고 해서 힘겨운 싸움을 벌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회사와 내가 지금 이 순간 서로 필요에 의해서 만났으며 각자의 목표나 요구에 따라서 거래를 주고 받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게 합리적이다.
절을 리모델링하겠다고 나서다가 지쳐 떨어지면 아무 소용없다. 그렇다고 절은 절대 바꿀 수 없는 곳이니 중인 내가 떠난다며 '바이바이~' 손을 흔드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내가 없는 조직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조직을 떠나 버리면 그동안의 노력은 어디 가서 보상 받을 수 있단 말인가? 조직을 향해 짝사랑 하듯 의욕을 부리다가 지레 지쳐 떨어지거나 부러져 버리면 이처럼 억울한 노릇도 없다.
조직 내에서 개인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머릿 속 회로를 각자 조금씩만 수정해 보는 거다.
그것이 설령 잠시 주춤하거나 구부러져야 하는 상황이라도 주저하지 말고 기꺼이 받아들이자. 자신의 기준과 원칙이 분명하여 머릿 속에 그려 놓은 절의 조망도, 즉 조직 내에서의 미래와 비전이 분명하다면 스스로를 기분좋게 리모델링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