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평가
시가평가(mark-to-market)는 유가증권이나 파생상품에 의한 채권·채무, 투자신탁 등 금융자산의 가치를 매입가(장부가)가 아닌 시장가격에 기초하여 평가하는 회계 원칙을 지칭한다. 유가증권의 경우, 시가평가에 따른 매입가와의 차액은 당기의 손익으로 계상한다. 시가평가를 적용하면 보유한 증권의 가격이 하락할 때마다 곧바로 손실처리를 함으로써 자본이 감소할 수 있고, 나아가 금융기관의 대출여력이 축소될 수도 있다.
시가평가는 회계 투명성과 정보의 정확성을 명분으로 1980년 이래 금융기관 회계에 널리 적용되어 왔다. 물론 모든 자산과 부채에 적용되지는 않으며, 각국의 사정에 따라 적용시점도 다르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8년 11월 16일 이후에 설정된 펀드를 포함한 모든 공사채형 수익증권에 대하여 2000년 7월부터 채권시가평가제를 시행하고 있다.
유가증권의 가치를 시장의 평가에 따라 적용한다는 시가평가제의 취지는 원칙적으로 정당하며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기초적 원리에 속한다. 그러나 최근 극심한 신용경색으로 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시가평가제의 적용이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미 의회를 중심으로 시가평가의 유보 또는 폐지 요구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금융회계기준위원회(Financial Accounting Standard Board)는 시가평가 관련 규정의 완화 방침을 시사하고 있다.
시가평가의 폐지 또는 완화를 주장하는 시각에서는 금융위기로 유가증권 시장이 사실상 붕괴되면서 정확한 가치 측정이 불가능해졌다는 점을 지적한다. 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는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시가평가제는 금융기관 자산의 가치하락과 자본손실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유가증권의 가치 하락은 기초자산의 손실 또는 신용도 하락에 기인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극심한 신용경색과 시장에서의 유동성 부족에 따른 일시적 현상일 수도 있다. 신용 손실의 경우 당연히 자산가치 평가에서 손실로 반영되어야 하지만, 유동성 부족에 따른 가격하락의 경우 시장이 정상화되면 본래 가격으로 회복될 수 있기 때문에 해당 자산의 매각 또는 만기도래 이전까지는 손실로 반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시가평가제의 고수를 주장하는 시각에서는 자산의 정확한 가치 산정을 위한 시가평가의 원칙적 중요성을 강조한다. 자산 가치는 계속 변화하는 것이므로 현재 시점에서 시장의 평가를 반영하는 것이 당연하다. 자산의 가치평가를 시장에 맡기지 않고 금융기관에 일임하거나 또는 취득가격(acquisition cost)에 의할 경우, 변화하는 상황을 반영하지 못함은 물론 투명성 훼손 등의 문제로 금융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커질 수 있다. 나아가 이는 금융불안과 신용경색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금융자산의 시장가격 하락이 더욱 가속화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