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래스스티걸 법
영국중앙은행(BOE)이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분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영국 일간 <더 타임스>는 9일 금융회사 비대화에 따른 부실과 금융위기 재발을 막기 위해 정부 내에서 이 같은 규제안이 논의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머빈 킹 BOE 총재는 최근 “상업은행 예금이 무분별한 투자에 쓰이지 못하도록 제한한 미국의 ‘글래스-스티걸(Glass-Steagall) 법’과 같은 법안 마련을 고려 중”이라며 상업은행과 투자은행 간 칸막이 가능성을 시사했다.
<한국경제, 2009.4.9.(김미희 기자)>에서 발췌
미국에서 1933년에 제정된 상업은행에 관한 법률로서, 공식명칭은 ‘1933년 은행법(Banking Act of 1933)’이지만, 제안 의원의 명칭을 따서 ‘글래스-스티걸 법’이라고 불린다. 글래스-스티걸 법의 제정은 미국 대공황의 경험으로부터 비롯되었다. 1929년의 주가폭락과 대공황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상업은행의 방만한 경영과 이에 대한 규제장치가 없었다는 점이 지적되면서, 은행들이 위험도가 높은 증권 관련 거래를 하지 못하도록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업무를 엄격하게 분리한 것이 글래스-스티걸 법의 핵심이다.
이 법의 주요 내용은 은행 지점망의 재조정,연방예금보험제도의 창설,예금 금리의 상한 설정,연방준비제도의 강화,투자은행 업무로부터의 완전 분리 등이었다. 특히 기업이 발행하는 유가증권의 인수(underwriting) 등의 증권 관련 업무는 투자은행에만 한정되고 상업은행에 대해서는 일체 금지되었으며, 상업은행과 투자은행 간의 자본관계와 인적관계는 완전히 분리되었다. 당시 유력한 은행이자 증권사였던 J.P. 모건의 증권 분야가 모건 스탠리로 독립될 수밖에 없었던 것도 바로 이 법 때문이었다. 이후 1999년까지 미국의 금융권은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으로 분리돼 각각의 고유 업무에만 종사하도록 규제되었다.
글래스-스티걸 법은 1999년 11월 12일 그램 리치 블라일리 법(Gramm Leach Bliley Act: 일명 Financial Services Modernization Act)이 통과되면서 무력화되었다. 월가의 금융규제 완화 요구, 금융백화점 창설을 노린 씨티그룹의 로비 등을 계기로 글래스-스티걸 법이 폐지되면서 금융지주회사의 설립을 통한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자본-인적 관계, 즉 상업은행의 증권업 겸업이 다시 허용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겸업 허용은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를 야기한 원인 중의 하나로 비판되고 있다. 글래스-스티걸 법의 무력화로 인해 투자은행의 부실이 상업은행으로 전이되면서 위기가 한층 더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2009년 2월 <타임>지는 당시 대통령이었던 클린턴과 상원 금융위원장 필 그램 등이 글래스-스티걸 법의 실질적인 폐지를 승인했다는 점을 들어 금번 금융위기의 주범 중의 하나로 거론하기도 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이 확산되면서 최근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재분리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980년대 FRB 의장을 지냈으며, 경제회복자문위원회(ERAB) 의장인 폴 볼커도 2009년 3월 6일 ‘금융 안정성 회복’을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금융위기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분리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대공황의 경험으로부터 제정된 글래스-스티걸 법이 무력화되고, 그로 인해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기침체 국면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할 때, 투자은행과 상업은행 간의 관계 재정립에 대한 논란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