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완의 블로그 2010. 7. 31. 18:23

시가평가의 폐지 또는 완화를 주장하는 시각에서는 금융위기로 유가증권 시장이 사실상 붕괴되면서 정확한 자산가치 측정이 불가능해졌다는 점을 강조한다. 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는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시가평가제는 금융기관 자산의 심각한 가치 하락과 자본 손실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예컨대 금융기관이 보유한 RMBS(주택담보대출채권)가 주택가격 하락 및 연체 증가에 대한 우려 등으로 신용등급이 급락함에 따라 시장가격이 절반 이하로 폭락했다고 하더라도, 시니어(senior) 등급의 RMBS를 만기까지 보유할 경우의 손실은 10%에 불과할 수도 있다. 이처럼 위험 기피 현상이 극에 달한 시점에서 시가평가 원칙을 고수하게 되면 금융기관의 자산 상각과 자본 손실로 인해 추가적인 대출 여력이 약화되는 등 금융위기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지난 2009년 3월 10일 버냉키 FRB 의장은 “최근처럼 ‘시장 기능’이 사라졌거나 유동성이 극도로 부족한 상황에서 (시가평가제에 따른) 단순한 수치는 현상을 왜곡하거나 부정확한 정보가 될 수 있으며, 이 같은 비정상적인 시장에서 거래되는 자산의 가치를 산정하기 위한 합리적인 방법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시가평가의 유보 또는 폐지보다는 개선에 무게를 둔 것이기는 하지만, 약 2주 전인 2월 말 의회 증언에서의 “시가평가제 유보가 금융위기 극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발언에 비하면 크게 변화한 것으로 평가되면서 당일 미 증시 폭등을 유발하는 계기로 작용한 바 있다.

반면 시가평가제의 고수를 주장하는 시각에서는 자산의 정확한 가치 산정을 위한 시가평가의 원칙적 중요성을 강조한다. 자산에 대한 가치는 계속 변하므로 현재 시점에서 시장의 평가를 반영하는 것이 당연하며, 만약 시가평가를 유보할 경우 금융 시스템 자체에 대한 불신이 더욱 확산될 수 있다.

2009년 3월 18일, 미국 FASB는 “기업들이 자산가치 측정시 ‘의미 있는 감정 기준’을 활용하는 것을 허용하기로 했다”고 언급하면서 공정시장가격(fair market value)에 대해 유연성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시가평가 규정을 완화할 것임을 시사했다. 이후 4월 2일 FASB는 시가평가 회계기준의 완화를 공식 승인했으며, “현재와 같이 활발하지 못한 시장에서는 ‘규칙적인(orderly)’ 거래에 대해서만 시가평가를 적용하고, 강제된 청산이나 투매자산 매각에는 적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시가평가 기준 완화는 2009년 2/4분기 회계결산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발표 당일인 4월 2일 뉴욕 증시에서는 씨티그룹과 웰스파고, BOA 등의 금융주 주가가 큰 폭으로 상승하는 등 시장에 호재로 인식되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부정적 영향에 대한 우려도 지속되고 있다. 우선 은행 회계의 투명성에 대한 신뢰도 저하, 잠재적인 부실자산에 대한 우려 등으로 인해 금융업종의 주가상승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으며, 나아가 부실채권 매입을 위한 공공-민간 투자 프로그램(PPIP: Public-Private Investment Program)의 활동에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시가평가 기준의 완화로 인해 상각 부담이 줄어든 은행들이 부실자산 매각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PPIP가 부실자산을 매입할 때 가격 산정에 따른 논란이 더욱 증폭될 수 있기 때문이다.